이불 밖으로 나오면 온 우주가 돕는다

하이디 0 303 2020.02.20 07:06

우리, 일단 이불 밖에서 얘기를 나누죠?


타임라인을 보니 새해는 새해인가 보다. 각종 신년 계획들이 뷔페처럼 다양하기도 하다. 문제는 단 하나. 다들 마성의 이불(Feat. 전기장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방구석에 가만히 있다가 결국은 흐지부지된다는 거. 그러다 보면 어느덧 꽃이 피고 개강 파티에 헤롱거리고 중간고사에 절망하고 기말고사에 후회하다 더운 여름을 맞이하겠지.



야심차게 새해를 준비하는 당신, 일단 이불 밖으로 나가자. 방구석만 아니라면, 무엇을 해도 좋다. 일단은 특정 장소/공간으로 가는 습관부터 들이는 게 어떠한가? 카페보다 안락하고 토즈보다 정다운 공간들을 소개한다.



서울도서관에서 시작되는 시나리오 라이터의 꿈


박진하(27세, 가양동 거주)씨의 인생은 폰부스(2002)라는 영화를 경험하기 전과 후로 나뉜다. 보는 것만으로도 오감을 뒤흔드는 아름다움에 매료된 그녀는 시나리오 작가라는 야심찬 꿈을 결심한다. 하지만 그녀가 나온 학교는 예체능 관련 대학/학과를 보낸 경험이 없었고. 결국 그녀의 꿈은 서랍으로 들어가고 만다.


적성에 맞지 않은 캠퍼스에 즐거움이라는 단어는 없었다. 아무 계획 없이 휴학만 벌써 두 번. 무엇부터 할지 모르는 시간 끝에 남은 것은 다양한 알바 경험 뿐. 시나리오 공모전에 올라간 당선자 명단을 지켜만 보는 것도 이제는 지겹다. 올해야말로 뭔가 하고 싶다. 우선으로 정한 목표는 영화 100편 보기. 좋은 것들을 빠짐없이 눈에 담고 그것을 바탕으로 손끝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


나름 창작을 꿈꾸는 사람인데 불법 다운로드는 어쩐지 민망하지 않은가. 남은 통장 잔액과 VOD 결제금액을 몇 번이고 저울질하다보니 시간이 제법 지났다. 그렇게 11인치 노트북 화면으로 겨우 눈을 돌려도 고민은 여전하다. 어두컴컴한 창문 사이를 겨우 비집고 들어온 햇살이 밀려 있는 설거지나 수북한 빨래 바구니를 비추고 있으면, 내가 이 나이에 이러고 있어도 괜찮은지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이 마구 밀려온다.


그래서 말인데요 진하 씨, 일단은 1호선에 몸을 맡겨요.


서울도서관 2층 디지털 자료실영화를 위한 공간
출처: 한국관광공사

서울도서관


시청역 5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올 수 있는 옛 서울시청 건물. 특히 디지털자료실과 옥상정원이 좋아서, 온종일 영화를 보기에 매우 적합한 공간이다.


자리를 예약하고 들어가면 ‘007 스카이폴’부터 각종 다큐멘터리와 고전 명작까지 풍부하게 갖춰진 1만여 점의 DVD 중에서 원하는 것을 대출받아 부지런히 챙겨볼 수 있다. 배고프고 지루해질 때쯤 되면 옥상정원으로 올라가 카페와 베이커리를 즐기거나, 태평로의 풍경을 보며 쉬어갈 수 있다.


서울도서관 옥상정원
출처: 썬도그

물론 영화를 보다가 궁금해지는 더 많은 정보를 그 자리에서 PC로 검색하거나, 약 15만 권을 열람할 수 있는 일반자료실에서 찾아 읽고 공부하는 것도 당연히 가능하다. 서울 시민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고, 아침 9시에 열어서 평일에는 밤 9시까지, 주말에는 6시까지 개방된다.



G밸리에서 시작되는 밤샘 코딩의 낭만


다들 그렇겠지만, 시작은 단순했다. 김지환(29세, 신도림동 거주) 씨도 마찬가지다. 배워두면 좋다는 세상 사람들의 말에 혹한 나머지 ‘코딩 무작정 시작하기’ 정도의 책을 도서관에서 집어들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회사 점심시간에 더듬더듬 자판을 두드릴 계획이었지만, 시도 때도 없는 회의에 보고에 정신이 팔린 분위기에서는 아무래도 힘들겠다 싶었다.


퇴근 후, 프랜차이즈 카페에 앉아 다시 마음을 잡는다. 검은 화면에 암호 같은 명령어와 로그가 찍히는 커맨드 창과도 조금씩 소통하는 기분이 들기 시작한다. 몇 시간씩 붙잡고 있다가 이윽고 ‘Hello world’ 문자열이 오랜 친구의 인사처럼 브라우저에 찍히는 순간, 누군가가 그에게 속삭였다.


“손님, 영업 끝나셨습니다 ^^”


이대로 집에 갔다간 롤이라던가 롤이라던지 롤과 같은 유혹에 빠질 유혹이 높다. 더군다나, 감이 잡힐듯한 이 기분도 놓치고 싶지 않다. 하지만 24시간 카페를 찾아 전전할 생각을 하니 어쩐지 눈치가 보이기도 한다. 마침 내일은 주말 아니던가. 밤을 새워서라도 하던 것을 깔끔하게 끝내고 싶다.


그렇다면 말이죠, 지환 씨. 가산 디지털 단지로 오시는 건 어때요?


퇴근하고도 오케이
출처: 공유허브

무중력지대 G밸리


가산디지털단지역 6, 7번 출구에서 들어올 수 있는 우림라이온스밸리 A동 612호 소재. 회의, 작업, 휴식 등의 생산적인 일을 실컷 해 보기에 더없이 좋은 공간이다.


애초에 서울시가 이곳을 설립한 이유부터가 ‘청년 직장인과 일반 청년의 동반 성장’이었기 때문이다. G밸리는 대관을 하든 하지 않든 개인 업무나 단체 회의를 진행할 수 있게 되어 있고,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때 책과 쿠션이 있는 코너를 이용할 수도 있다. 일하다가 출출해지면 공간 한가운데에 있는 ‘공유부엌’에서 요리를 해 먹으면 되고, 해가 지면 다음 날 8시까지 남녀를 구분하는 ‘휴식지대’에 들어가 누워 잘 수도 있다.


무중력지대 G밸리 상상지대
출처: 공유허브

‘창의공간’을 대여하려면 홈페이지에서 신청하면 된다. 뭔가를 하고 싶은 19~39세 청년이기만 하면 멤버십 가입과 이용에 큰 문제는 없다. 굳이 단점을 꼽으라면, 주말에는 공간 자체가 열리지 않는다는 정도.



청년허브에서 찾아가는 나만의 속도


강미진(26세, 대치동 거주)씨는 이번 하반기에 어디에도 지원서를 쓰지 않았다. 3일 연속 야근을 당해도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어야 한다는 선배들을 말을 들으니 그 어디에도 지원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자신이 회사라는 조직에 놓여 있는 것을 상상만 해도 얼굴에서 경련이 날 것만 같다. 조금 돌아가도 좋으니,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하지만 집안의 눈치는 그녀의 결심만으로 커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새해 첫날, 떡국을 먹으면서 아빠는 말씀하셨다. 이제 실컷 놀았으니, 올해는 정신 좀 차리라고. 식도를 타고 신나게 내려가던 떡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S그룹에 들어간 사촌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쉬는 엄마의 한숨 소리가 가슴에 남아있는데 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의 기간을 충분히 가지고 싶다. 나와 비슷한 고민이 있는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고 싶다. 하지만 세상의 시간은 너무도 빠르고, 가끔 나의 속도가 비정상적인 게 아닌가 싶은 불안감이 고개를 들곤 한다.


일단은 말이죠 미진 씨, 불광동에서 쉬다 가세요.


‘안 취준’도 괜찮은 공간
출처: 김돌

서울시 청년허브


서울시와 연세대학교가 공동으로 설립해 운영하는 청년허브는, 공식적으로는 서울시 청년 정책을 연구하고 실행하는 기관이지만, 실제로는 아침 일찍 나가 저녁 늦게 들어오는 근면함을 가족들에게 어필하기에 매우 좋은 곳이다.


일단 입지부터가 아지트 느낌이 난다. 서울 북쪽 3·6호선 불광역 2번 출구의 옛 질병관리본부 터 한복판에 청년허브가 있기 때문이다. 들어가면 볼 수 있는 풍경도 흥미롭다. 칸막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청년 기업 사무실과 여유로운 커피가 공존하는 테이블의 조화는 쉽게 찾기 힘든 광경이다.


청년허브 미닫이사무실 주변 
출처: 수원시평생학습관

그렇게 허브 공간을 들락날락하다 보면 강연, 기획연구, 사업 참여 공고 등을 자연히 접하게 될 것이다. 거기서 마음 가는 ‘일’을 찾으면 합류하거나 작당해서 시작할 수 있다. 폭넓은 네트워크에서 자기 같은 처지의 동료를 만날 수 있다는 점은 보너스.



나를 누르는 중력에서 벗어나는 곳, 무중력 지대 대방동


딱히 할 것이 없었다. 가진 거라고는 애매한 전공과, 그보다 더욱 애매한 학점뿐. 그러다 의경 동기가 말했다. 경찰이나 하자고. 전의경 특채가 있다고 하니 아무래도 유리하지 않겠냐고. 알았다고 했다. 그렇게 김정빈(25세, 노량진동 거주)씨의 2년이 흘러갔다. 남은 것은 머릿속을 안개처럼 떠도는 형법 몇 구절과 몰라보게 좋아진 철권 실력뿐. 합격 후기를 보면서 부푼 꿈을 피우던 시기는 지나갔다. 이제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관둘 수도 없다. 아직 5학기나 남은 등록금도 걱정이고, 또 그것을 해결한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냥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시기를 대학생이라는 이름으로 유예하는 것일 뿐. 매일 자신을 반기던 노량진 육교도 사라졌다. 세상은 이토록 무섭게 변해가는데, 자신만 화석처럼 이대로 굳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를 둘러싸는 현실의 무거운 중력으로부터 잠시 벗어나고 싶다. 커피를 마시면서 잠시 쉬어도 좋고, 무언가를 위한 공부가 아니라 어떤 것에 영향받기 위한 공부를 하고 싶다. 그렇게 스스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하고 싶다. 하지만 어디를 가야 할지 모르겠다. 결국, 걸음이 닿는 곳은 오락실이다.


그러지 말고 정빈 씨, 조금만 더 걸어와서 우리 대방동에서 만나요.


무중력지대 대방동


무중력지대 대방동 전경중력의 무게감이 버거운 당신을 위해서
출처: 공유허브

대방동 무중력지대는 노량진역 바로 옆의 대방역 3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보이는 공터에 있다. 이 청년 활력 지원 공간은, 그 건물이 그렇듯, 겉보기만으로는 짐작할 수 없는 다양한 개성의 청년들이 활력 넘치는 다방면의 활동과 모임을 결성하고 추진하도록 돕는 곳이다.


‘체력이 청춘력’이라는 이름으로 지난 10월에 열린 멤버십 운동회부터 “정치가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같은 묵직해 보이는 강좌와 소모임까지, 여기서는 ‘청년다움’을 갖춘 활동이기만 하면 마음 맞는 또래 청년들끼리 기획하고 추진해볼 수 있다.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면, 그 수가 결코 적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1층 로비를 2층에서 내려다본 전경1층 로비를 2층에서 내려다본 전경
출처: 공유허브

상상력에는 경계가 없는 것처럼, 이곳 중앙 로비의 ‘상상지대’와 ‘나눔지대’는 벽 없이 합쳐져 있다. 처음 와 본 사람도 공유부엌에서 차 한 잔 내려 조용히 마시고 있다가, 뭔가 재밌는 일을 이야기하는 주변 사람들(또는 포스터!)에 다가가도 전혀 위화감이 없다. 그렇게 들이대면서 친해질 기회가, 대방동 무중력지대에는 얼마든지 열려 있다.



올해도 무사히 생존하기를 바랍니다



문득 궁금하다. 우리는 어쩌면 새해 결심을 지켜가기에 너무 삭막한 공간에 놓여버린 것은 아닐까. 메뉴얼대로 살아간다면 꿈꿀 수 있겠냐고 걱정하는 유승준(40, 재외동포)의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결심은 충분히 나약하고 위태롭다.


과연 올해 결심은 무사히 ‘지켜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하지만 청년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도 들어갈 수 있어서, 일단 ‘출첵’이라도 열심히 하다 보면 뭔가가 시작하고 싶어지는 공간들이 있어서 안심이다. 이러한 것들을 바탕으로 우선은 시작해볼 수밖에. 그러다 보면 잘 될 거라 믿는다.


새해니까, 괜히 그렇게 믿어보고 싶다.


원문: Twenties Time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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